올해 초 사고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코비 브라이언트, 사고 후 그의 이름이 붙은 신발들이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그리고 해당 신발들의 프리미엄은 2~300% 치솟았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반영된 마이클 조던의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가 흥행하면서 조던 브랜드의 판매가 늘었다고 한다. 또한, 조던을 위해 제작돼 조던이 직접 신고 뛰었던 운동화 나이키 에어 조던1은 운동화 경매 사상 최고 경매가인 7억 원에 낙찰되는 신기록을 썼다.
고교 시절
#1 고등학생 때 학교에서 유행하던 운동화는 나이키의 에어 포스와 맥스, 리복의 퓨리, 아디다스의 슈퍼스타였다. 특히, 포스와 맥스의 특정 모델들은 프리미엄이 붙어서 거래되었고 학생 신분이던 나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뽈록이, 00 완창라고 이름 붙은 모델들의 포스와 형광색의 맥스들, 일본 유명 연예인이 신어서 이름 붙은 신발도 있고 만화 캐릭터의 색과 비슷하다며 이름 붙은 모델도 있었다. 이런 신발들은 대게 멀티숍에서 거래되었다.
#2 고등학교 친구와 일화이다. 그 친구는 부유했다. 옷도 교내에서 제일 잘 입었고 비싼 아이템, 유행하는 아이템을 다 가지고 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쓰고 있는 나이키 모자가 예뻐서 어디서 구매하는지 물어봤더니 자기가 판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모자는 에미넴이 써서 유명한 제품이었고 그 친구는 어디선가 10개를 구해놓고 프리미엄을 붙여서 판매하고 있었던 것이다. - 물론 내게는 친구니까 저렴하게 준다고 했었다. - 그리고 그 수익으로 다른 유행 아이템을 샀다. 이때 나는 잠시 사업이란 이런 걸까 생각했다.
#3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장은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신발에 관심 갖던 고등학생이 30대를 훌쩍 넘어버렸고 멀티숍에서 구매하거나 알음알음으로 거래했던 희귀 아이템(신발, 의류)들이 이제는 플랫폼을 통해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헤비 컬렉터는 아니지만 이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조금씩 찾아보던 신발에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 건 약 4년 전 아디다스와 칸예 웨스트의 '이지 부스트 350 V2 벨루가'가 발매했을 때다. 우연히 신청한 신발이 당첨되었고 약 30만원이던 신발을 일단 구매했다.(당첨된다고 공짜로 주는게 아니라 살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왜 30만원이나 하는 신발을 추첨까지 하면서 구매하는지 궁금했다. 신발과 관련한 커뮤니티에 가입해 상황을 조금 더 알아보니 이유가 있었다.
- 희소성: 전 세계에 출시되는 수량이 한정적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입고되는 수량도 적다.
- 상징성: 그 유명한 칸예 웨스트가 디자인한 신발의 버전 2의 첫 컬러라는 것(OG 컬러는 매우 중요하다.)
- 가격 프리미엄: 이미 그전에 출시한 칸예의 가격이 출시할 때보다 최소 몇 십만원씩은 더 프리미엄이 붙었기 때문에 이 신발 역시 프리미엄이 붙을 것이라는 기대 심리(*무조건 붙지는 않는다.)
이런 일련의 이유로 핫했던 그 신발을 나는 70만원에 다른 사람에게 판매했다. 이유는 당시에는 해당 디자인이 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난해했고 그 가격대의 신발을 막신고 다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은 후회하지만..)
전문 용어(?)로 리셀(Re-Sale)을 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리셀이라는 용어는 조심해야 한다. 뜻은 말 그대로 재판매한다는 것이지만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리셀이라는 용어는 볼드모트와 같다. 모두 알고 있지만 대놓고 말할 순 없다. 혹여라도 어떤 신발이 발매하기도 전에 리셀 시세를 물어보면 그 글에 감당하기 어려운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릴 것이다. 리셀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리셀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정판 신발을 구매하는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셀을 금기시 하면서도 커뮤니티마다 어김없이 거래 게시판이 있다. 처음에는 구하기 어려운 신발, 중고 신발을 거래하자는 의도였겠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리셀 게시판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비공식적인 거래에는 몇 가지 리스크가 있다. 여기서 거래되는 신발들은 다 정품일까? 시세는 누가 정하는 걸까? 어떻게 알고 판매, 구매하는 걸까? 이런 거래에 문제점은 없을까? 내 생각에는 적어도 아래 세 가지의 위험이 거래 시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안 요소일 것이다.
- 가품/사기 가능성: 중고 나라만큼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기꾼들이 있다. 가품을 판매하거나 아예 돈만 받고 연락이 없다거나 하는 위험성이 있다.
- 가격의 모호성: 공시 가격이 없기 때문에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사야 하는지 정하기가 어렵다. 거래 내역에도 가격을 삭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정 가격의 책정이 어렵고 발품을 팔아야 한다.
- 불투명한 거래 정보: 모든 거래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허수가 존재한다. 이를 이용한다면 시세 조작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말이다. (높은 가격에 계속 판매 완료를 올린다.)
그리고 이러 비공식적인 리셀 거래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편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등장한게 이제 말하고자 하는 한정판 신발 거래 플랫폼이다.
한정판 신발 거래 플랫폼
사실 한정판 신발의 거래는 과거부터 오프라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온라인으로 그 범위를 넓히며 현재는 미국의 stockX처럼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3자 거래 플랫폼으로까지 그 거래 방식이 발전했다.
stockX의 경우 현재는 스니커즈에서 범위를 넓혀 의류, 시계 등(한정판 제품)이 거래되고 있지만 처음은 한정판 신발 거래로 시작했다.(창업자 TED 강연 영상: Why sneakers are a great investment https://www.ted.com/talks/josh_luber_why_sneakers_are_a_great_investment?language=en)
국내에도 2018년 프로그를 시작으로 현재 런칭 예정인 솔드아웃을 포함 총 5개의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이 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시장이나 규모에 비하면 많은 업체 수라고 생각한다. 올해 본격적으로 경쟁이 붙은 이들은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구분 | 프로그 | 아웃오브스탁 | xx블루 | 크림 | 솔드아웃 |
개발사 | 힌터 | 아웃오브스탁 | 엑스바이블루 (서울옥션) |
스노우 | 무신사 |
출시 일시 | 2018.02 | 2019.07 | 2019.08 | 2020.02 | 미정(원래 5월 예정) |
판매 수수료 | 8~10% | 9~11% | 9-13% | 미정 (오픈부터 지금까지 무료 이벤트 중) |
미정 |
신발 거래 플랫폼, 그 이상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 5개 업체는 국내 시장 크기에 비해 너무 많다. 시장이 커지고 경쟁이 심해질수록 개편되겠지만 그 후에도 이 플랫폼들의 수익성은 큰 과제일 것이다.
물론, 거래 플랫폼이니 거래 수수료를 최우선으로 하겠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이키매니아, 풋셀 등과 같은 커뮤니티의 게시판을 통해 거래를 하면 거래 수수료를 내지 않고 판매할 수 있고 나아가서 중고나라, 당근 마켓 등 수수료 없이 거래 가능한 대체재가 많다. 앞서 말한 가품, 시세 등은 발품 팔아서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신발 거래 플랫폼으로 리셀만 하려는 사람들보다는 신발 더 나아가서는 이런 한정판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플랫폼으로 끌어들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에 가보면 수십개부터 수백개의 신발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사람부터 소소하게? 한 가지 모델만 수집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있다. 그리고 수집용과 실착용 두 개씩 구매하는 사람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신발을 사고 모으는게 단지 리셀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매니아들은 한 번의 거래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향후 플랫폼의 헤비 유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으로 신발 거래 플랫폼들이 매니아들을 끌어들이고 수익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고려할 수 있는 몇 가지를 생각해봤다.
- 거래 제품군 확대: 신발만 한정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슈프림처럼 브랜드에서 나오는 모든게 한정 판매인 것도 있다. 정가 30만원 슈프림 후드티가 100만원에 거래되는게 이 시장이고 문화이다. 신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트릿 패션에도 관심이 많고 명품 등에도 관심이 많다. 그리고 유행에 민감하기 때문에 빨리 사야 하고 빨리 처분해야 한다. 신발 말고도 더 단가가 높은 제품의 거래 수수료를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다. stockX는 롤렉스도 거래한다. (이미 국내 업체 중 몇 곳은 의류까지 확대하고 있다.)
- 시장의 확대: 스노우의 크림은 라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더 큰 시장인 일본에 이 서비스를 테스트 해볼 가능성이 충분하다. 다른 플랫폼들도 아직 시장 초기 단계인 아시아쪽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이미 이 시장이 너무 뜨거워져서 쇼미 더 머니 중국판에서 출연자들이 신고 나오는 신발은 두세배가 붙여서 거래된다.(물론 중국은 중국판 stockX인 '독'이 있다.) 그리고 시장마다 선호하는 제품의 차이가 있는데 이를 착안해서 우리나라에서 못 구하는 신발을 외국 판매자와 거래할 때 혹은 그 반대의 경우 거래 안정성을 보장해준다면 시장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법적으로도 따져봐야할게 많겠지만..)
- 커뮤니티 구축: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커뮤니티 구축이다. 어쩌다 당첨돼서 신발을 판매하려는 사람들이 한 번씩 들어오는 것보다 이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을 잡아두고 오래가는 것이 필요하다. DAU, MAU가 높으면 나중에 광고 플랫폼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기의 신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이를 공유, 자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건 어떨까? - stockX를 쓰면서 재미있는 기능은 주식처럼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과 각 브랜드별 지수를 증시처럼 볼 수 있는 것이다. 매일 거래 시세를 반영해서 얼마나 올랐는지 볼 수 있고 자신의 스니커즈를 재산처럼 관리하는 것이다. - 이처럼 사용자들이 관계를 맺고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구축은 사용자 충성도를 높이고 나아가 서비스를 확장하는데 큰 도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크림은 포트폴리오 만들기, 이미지 공유 등의 기능이 있고 프로그는 지난 주 네이버 카페를 오픈했다.)
이미 플랫폼마다 사용자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위의 내용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마무리
시장의 경쟁은 시작되었고 승자를 가리기 위한 치열한 제로섬 게임에 들어섰다. 네이버가 크림 거래 수수료 무료를 멤버십에 포함한다던지, 솔드아웃 이용 시 무신사 포인트 적립,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다던지 등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 아닐까? 앞으로 이런 큰 기업들의 물량 공세를 상대로 작은 회사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살아남을지 지켜봐야겠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 많은 플랫폼들이 런칭하고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것은 큰 장점이지만 너무 리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의 문화로써 함께 시장의 성장을 도모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하면 좋겠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물론, 한 개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쉽다. 신발 좋아하는 사람 중에 이런 플랫폼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나도 stockX 런칭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그래서 오지랖으로 한 번 이런 글을 적어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두서없이 쓴 글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글쓰는게 쉽지 않았지만 평소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혹시라도 잘못된 내용 등이 있으면 편하게 댓글 남겨주시길(욕심 같아선 더 깊게 쓰고 싶었는데..)
끝.
+ 처참한 나의 나이키 응모 내역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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